강연 한시간 먼저 도착해서 주변을 걸었다. 문이 없는 가게들을 지나가며 금속과 반짝임과사람들을 보았다. 그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조그만 기술에 대해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술의 의미 정도는 설명할수있을 것 같았다. 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그 운동에 대한 기술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던 학부때에는그림에 대한 기술이 있었다. 나미에게 움직이는 나무인형을 선물하려던 때도 어떤 기술이 생겼다. 내가 경험하고 쌓아온 기술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열렬이 사랑할 때 기술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나의 경우 운동을 사랑했고, 그림을 사랑했고, 나미를 사랑하는어떤과정에서 선물을 받았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술이라는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이불가능 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기술은 애초에 갑자기 받기도 하는 선물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편지를 쓸 때, 언어를 모른다고 해서, 혹은 글의 재주가 없다고 해서 편지를 못쓰는 일은 없다.열렬이 사랑할 때 ,우리는 반드시 어떤 편지의 고유한 기술을 선물 받게된다.
강연이 끝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때문에 자신의 결과물이 뒤쳐질 것 같다는 고민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짜장면가게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짜장면가게를 들어서면서 떠올리는 것은 맛이다. 가게마다의 고유한 맛. 만약 어떤 사람이 가게의 플레이팅이나, 요리의 기법을 떠올리며 가게를 들어서고 있다면 그사람은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러 왔다기 보다는 관련창업을 준비중이거나 유사한 직업을 업으로하는 사람일 확율이 높다.
전시에도 그랬다. 재료를 어디서 샀는가. 어떻게 실현하면 되는가. 따위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역시 그게 필요하거나 필요할 예정 인 것이다. 이런 질문에는 기술이라는 선물을 받게된 경위나
그것이 가진 의미같은 것은 관심이 없으며 어떤 표면을 알기위한 목적만 있다. 기술은 거들 뿐이다. 컵이 없어서 물을 못 마시지는 않는다. 컵의 본질을 사랑한다면 대부분 컵이 되고, 물을 마시게된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음식이 담긴 그릇보다, 재료를 능숙하게 다듬는 모습보다, 당신이 만든 요리의 맛을 기대한다. 설령 당신이 짬뽕집으로 업종을 변경한다고 해도. 당신만이 생각하는 궁극의 맛에 이르는 과정을 사랑하고 있다면.